
Nikola Tesla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생이고, 1943년에 사망했습니다.
유명한 전기 공학자이자, 우리가 잘 알고있는 전기공학자 '에디슨'과 대립하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테슬라의 타고난 천재성과, 현재에서도 재현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발명품들은 아직까지도 많은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런칭하는 최고의 전기차 브랜드인 '테슬라'또한 니콜라 테슬라에게서 따온 이름의 브랜드입니다.

제너럴 일렉트릭
그의 어린 시절은 동방정교회 사제인 부모님의 밑에서 자라났지만, 부모님의 가업인 목회의 길을 걷지 않고 전기공학 분야에 관심을 보여 프라하 대학에 입학한 뒤 , 물의를 일으켜 제적당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에디슨 컴퍼니(현 제너럴 일렉트릭) 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한 전기공학자인 토마스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직류 전기 송배전을 옹호하는 에디슨과는 다른 교류 송배전을 옹호하면서 서로 대립점이 생겼고, 테슬라는 교류 전기의 가능성을 보고 에디슨의 회사에서 나와 교류전기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테슬라는 많은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교류 전기 보급에 도움을 줄 웨스팅하우스라는 인물과 계약을 맺고 거금의 투자 자금과 특허비를 지원받게 됩니다.

직류 송전과 교류 송전의 비교
이후 에디슨과 테슬라는 직류전기와 교류전기라는 송배전 방식의 대립점 때문에, 많은 대립과 싸움을 반복했고, 이는 전류 전쟁으로 전기 공학 역사에서 남는 하나의 큰 사건이 됩니다.
웨스팅 하우스와 손을 잡은 테슬라는 교류 송전 방식을 발전시키며, 모든 세상의 송전 방식은 현재 교류송전의 방식으로 사용되어 집니다. +와 -극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콘센트를 사용하는 현대만 보아도 교류의 편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직류는 현재 자동차 배터리나 건전지의 형태로 남아있긴 합니다. ( +, - 극으로 전류를 사용하는 방식이 직류 송배전 방식이라고 합니다.)
1900년대 초 전기가 막 보급되어질 시점에서 교류 송배전을 옹호하고 이를 배급하는데 앞장서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한 테슬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교류전기의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 교류전기 특허 포기에 관련한 설은 두가지 설이 있는데,
1. 웨스팅하우스의 특허 출원 제안을 거절하고, 값없이 인류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거절하였음
2. 에디슨의 회사에서 특허소송에 의한 압박으로 자금압박을 이기지 못해 특허를 포기 하였음
이러한 추측으로 교류전기의 특허를 포기하고 회사도 나오게 됩니다.
테슬라는 이후 발명은 지속하지만 상업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노후를 보내며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일상을 보내다가 1943년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무선통신의 굴리엘모 마르코니
그가 발명에 일조했지만 빼앗긴 특허와 상품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형광등'과 '라디오'입니다.
형광등은 테슬라가 연구에 많이 기여했음에 불구하고 제품화 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은 타인이었으며,
그 형광등을 보급하여 돈을 번 회사는 제너럴 일렉트릭, 즉 에디슨의 회사였습니다.
라디오는 테슬라가 1901년 특허를 낸 마르코니보다 1년앞서 완성했지만, 테슬라의 무선통신 특허취득을
미국의 특허청에 의해 강제로 마르코니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1898년에는 라디오로 제어하는 무선조종 배를 시현하였고, 레이더의 초기단계를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1899년에는 무선으로 전력을 보내는 연구를 했습니다. 지금의 핸드폰 무선충전기가 생각나네요
이 무선 송전탑 사업은 테슬라가 거의 구상을 마친 단계에 이르렀지만 투자자( J.P 모건 )가 투자 지원을 중단함으로
모든 사업과 연구가 자금난으로 중단되게 됩니다.

또, SETI 프로그램이라고 불리우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그램, 즉 외계인 탐사 프로그램도 니콜라 테슬라가
제안하여 J.P 모건의 도움을 받아 1890년대에 지구 통신용 타워를 지어 1970~1990년대에 시작된 SETI 프로그램의 시작을 100년 앞당길 수 있었지만, 이것도 J.P 모건의 투자 중단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현재 테슬라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으로 남아있는 잔여물은 현재 테슬라 코일이 거의 유일하고, 전압을 최대 400만 볼트까지 올릴수 있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1899년도 테슬라가 직접 발명하고 진행한 무선 송전실험에서는 1억볼트까지 상승하는 테슬라 코일도 있었습니다. )

전기공학에 뛰어난 천재였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인상적인 언변의 소유자였으며, 8개 국어를 할줄 알고, 188cm의 장신에 잘생긴 얼굴, 성격도 쾌활했다고 합니다.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이성에게 인기도 많았지만 결혼과 가정에 쏟는 시간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사교계 진출은 단지 ,
투자자와 인맥을 만들기 위한 연구적 목적이었습니다.
많은 루머와 미친 과학자, 괴짜 취급을 받으면서도 결국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모습과 엄청난 상상력으로
18~19세기에 현대에서도 상상할 수없을 만큼의 위대한 발명을 지속했습니다.
과학자는 즉각적인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테슬라의 발전된 아이디어가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테슬라의 작품은 씨를 뿌린 작물과 같다. 그의 의무는 앞으로 올 사람들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길을 가리키는 것이다.
- 익명의 평론가의 글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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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생이고, 1943년에 사망했습니다.
유명한 전기 공학자이자, 우리가 잘 알고있는 전기공학자 '에디슨'과 대립하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테슬라의 타고난 천재성과, 현재에서도 재현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발명품들은 아직까지도 많은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런칭하는 최고의 전기차 브랜드인 '테슬라'또한 니콜라 테슬라에게서 따온 이름의 브랜드입니다.

제너럴 일렉트릭
그의 어린 시절은 동방정교회 사제인 부모님의 밑에서 자라났지만, 부모님의 가업인 목회의 길을 걷지 않고 전기공학 분야에 관심을 보여 프라하 대학에 입학한 뒤 , 물의를 일으켜 제적당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에디슨 컴퍼니(현 제너럴 일렉트릭) 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한 전기공학자인 토마스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직류 전기 송배전을 옹호하는 에디슨과는 다른 교류 송배전을 옹호하면서 서로 대립점이 생겼고, 테슬라는 교류 전기의 가능성을 보고 에디슨의 회사에서 나와 교류전기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테슬라는 많은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교류 전기 보급에 도움을 줄 웨스팅하우스라는 인물과 계약을 맺고 거금의 투자 자금과 특허비를 지원받게 됩니다.

직류 송전과 교류 송전의 비교
이후 에디슨과 테슬라는 직류전기와 교류전기라는 송배전 방식의 대립점 때문에, 많은 대립과 싸움을 반복했고, 이는 전류 전쟁으로 전기 공학 역사에서 남는 하나의 큰 사건이 됩니다.
웨스팅 하우스와 손을 잡은 테슬라는 교류 송전 방식을 발전시키며, 모든 세상의 송전 방식은 현재 교류송전의 방식으로 사용되어 집니다. +와 -극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콘센트를 사용하는 현대만 보아도 교류의 편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직류는 현재 자동차 배터리나 건전지의 형태로 남아있긴 합니다. ( +, - 극으로 전류를 사용하는 방식이 직류 송배전 방식이라고 합니다.)
1900년대 초 전기가 막 보급되어질 시점에서 교류 송배전을 옹호하고 이를 배급하는데 앞장서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한 테슬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교류전기의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 교류전기 특허 포기에 관련한 설은 두가지 설이 있는데,
1. 웨스팅하우스의 특허 출원 제안을 거절하고, 값없이 인류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거절하였음
2. 에디슨의 회사에서 특허소송에 의한 압박으로 자금압박을 이기지 못해 특허를 포기 하였음
이러한 추측으로 교류전기의 특허를 포기하고 회사도 나오게 됩니다.
테슬라는 이후 발명은 지속하지만 상업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노후를 보내며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일상을 보내다가 1943년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무선통신의 굴리엘모 마르코니
그가 발명에 일조했지만 빼앗긴 특허와 상품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형광등'과 '라디오'입니다.
형광등은 테슬라가 연구에 많이 기여했음에 불구하고 제품화 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은 타인이었으며,
그 형광등을 보급하여 돈을 번 회사는 제너럴 일렉트릭, 즉 에디슨의 회사였습니다.
라디오는 테슬라가 1901년 특허를 낸 마르코니보다 1년앞서 완성했지만, 테슬라의 무선통신 특허취득을
미국의 특허청에 의해 강제로 마르코니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1898년에는 라디오로 제어하는 무선조종 배를 시현하였고, 레이더의 초기단계를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1899년에는 무선으로 전력을 보내는 연구를 했습니다. 지금의 핸드폰 무선충전기가 생각나네요
이 무선 송전탑 사업은 테슬라가 거의 구상을 마친 단계에 이르렀지만 투자자( J.P 모건 )가 투자 지원을 중단함으로
모든 사업과 연구가 자금난으로 중단되게 됩니다.

또, SETI 프로그램이라고 불리우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그램, 즉 외계인 탐사 프로그램도 니콜라 테슬라가
제안하여 J.P 모건의 도움을 받아 1890년대에 지구 통신용 타워를 지어 1970~1990년대에 시작된 SETI 프로그램의 시작을 100년 앞당길 수 있었지만, 이것도 J.P 모건의 투자 중단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현재 테슬라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으로 남아있는 잔여물은 현재 테슬라 코일이 거의 유일하고, 전압을 최대 400만 볼트까지 올릴수 있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1899년도 테슬라가 직접 발명하고 진행한 무선 송전실험에서는 1억볼트까지 상승하는 테슬라 코일도 있었습니다. )

전기공학에 뛰어난 천재였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인상적인 언변의 소유자였으며, 8개 국어를 할줄 알고, 188cm의 장신에 잘생긴 얼굴, 성격도 쾌활했다고 합니다.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이성에게 인기도 많았지만 결혼과 가정에 쏟는 시간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사교계 진출은 단지 ,
투자자와 인맥을 만들기 위한 연구적 목적이었습니다.
많은 루머와 미친 과학자, 괴짜 취급을 받으면서도 결국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모습과 엄청난 상상력으로
18~19세기에 현대에서도 상상할 수없을 만큼의 위대한 발명을 지속했습니다.
과학자는 즉각적인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테슬라의 발전된 아이디어가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테슬라의 작품은 씨를 뿌린 작물과 같다. 그의 의무는 앞으로 올 사람들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길을 가리키는 것이다.
- 익명의 평론가의 글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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