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ward Hughes
하워드 휴즈는 1905년생이며, 미국의 월트디즈니, 에디슨, 빌게이츠와 어깨를 나란히 위대한 사업가로
선정된 사람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마블의 아이언맨에서 하워드 스타크와 토니 스타크의 모델로 유명합니다.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이기도 합니다.

하워드 휴즈 주니어의 아버지인 하워드 휴즈 시니어는,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였다가 석유를 채굴할 때 사용하는
드릴을 발명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영국 귀족출신이었던 휴즈의 어머니는 하워드 휴즈 시니어와 결혼하여 하워드 휴즈 주니어를 낳게 됩니다.
하워드 휴즈는 어릴 적 부터 기계공학에 소질을 보이며 텍사스의 명문 라이스 대학에 기부입학을 했습니다.
1922년인 하워드가 16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2년뒤인 1924년에는 아버지마저 여의며 18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회사인 하워드 툴 컴퍼니를 이어받습니다.

지옥의 천사들 포스터
아버지를 여의고 난 뒤부터, 하워드는 대학을 자퇴하고 평소부터 하고싶었던 영화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에 심심치 않게 여러편을 찍었는데 이 작품들이 아카데미 수상후보에 오르게 되자,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927년부터 3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100만불을 들여 전쟁영화 '지옥의 천사들'을 개봉하게 됩니다.
이 '지옥의 천사들'은 광고비에 또 300만불을 추가해서 사용하지만, 그 2배의 수익인 800만불의 이익을 보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때 광고비를 사용하기 위해 회사 지분을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워드 휴즈와 교제한 여배우 중 하나였던 '베티 데이비스'
하워드 휴즈는 이후 '스카페이스', '무법자'와 같은 영화를 찍고 영화계를 성공적으로 그만둡니다
이 영화계에 있던동안 수많은 여배우들과 교제하며, 여기서 몇 명의 여배우들은 자신의 영화사와
계약해서 성공적인 스타로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부터 어려서 공학자, 사업가, 디렉터, 엔터테이너의
모든 역할을 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하워드 휴즈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습니다.

H-1 레이서 사진
하워드 휴즈가 전쟁영화 '지옥의 천사들'을 제작할 때에 비행기 전투장면 촬영때문에 비행기 개발에도 관심을 보였었는데, 비행기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하워드 휴즈는 1935년 경주용 비행기인 'H-1 레이서'를 만들어 당시 시속 563 km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하워드 휴즈는 비행기로 북미 대륙횡단기록에 도전하였고, 1938년 7월에 91시간만에 세계일주를 완수하면서 파일럿으로서의 명예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
항공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고 항공기 제작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고속 정찰기 제작의뢰를 군에게 받아 제작하지만, 이때에 자신이 직접 시험운행을 하면서 불시착해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이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얼굴에 콧수염을 기릅니다.
하워드 휴즈의 고속정찰기의 제작이 성공할 때 즈음 제트엔진이 개발되어 프로펠러를 이용한 고속정찰기의 제작이 필요없어졌고, 이러한 트라우마를 겪은 하워드 휴즈는 오히려 초거대 비행정인 '허큘리스'를 제작에 돌입하게 됩니다. 허큘리스는 오랜 개발기간과 시대에 맞지않는 비효율적인 항공기로, 비행을 하자마자 박물관에 들어가지만, 추후 이 휴즈 항공기 회사는 '아파치 헬기'로 유명한 군용헬기 'AH-64'를 제작합니다.

1966년, 하워드 휴즈는 수 차례의 비행기 사고로 인한 후유증과 정신병(강박장애)가 심해져 , 결국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가스로 이주한 뒤, 그곳의 한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임대하며 그곳에서 기업 운영 업무를 보다가, 자신이 묵은 호텔에 다른 사람도 묵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되자 그 호텔을 구매합니다.
사업가 기질을 보인 하워드 휴즈는 라스베가스를 글래머러스 하게 바꾸고 싶다고 얘기했고, 고급 유흥도시로 만들
고싶다는 그의 야망 하에 라스베가스 중심지인 스트립안에 있는 대형호텔 5개를 사게 됩니다.
또 건너편 호텔의 불빛이 자신의 수면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 호텔을 구입하고, 자신이 보고싶은 시간에 영화를
방송국에서 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라스베가스 방송국도 인수하게 됩니다.
하워드 휴즈의 행동을 아니꼽게 보는 마피아들도 있었지만 당시 하워드 휴즈의 권력과 힘, 재력은 미국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인물이었기에 오히려 호텔의 경영을 대신 맡아주고 뒷처리까지 해주는 조직으로 전락해버립니다.
하워드 휴즈 라스베가스의 호텔과 시설을 거의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 힘이 네바다 주까지 미쳤고, 사람들은 그를 라스베가스 남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의 라스베가스에 대한 애정은 핵폭발 실험 제지까지 이어졌는데, 미국정부가 주도하는 네바다 핵폭발 실험을 막기위해 엄청난 돈을 로비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이 핵폭발 실험만큼은 막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1976년 즈음 은둔생활을 이어가다 사망하면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 했지만, 그가 보여준 공학자, 영화 감독, 파일럿, 항공기 제작자, 사업가로 여러가지 성공을 거둔 모습, 또 강박장애와 결벽증을 가졌음에 불구하고 목적을 위해 이겨내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한 번 져주는 순간,
절대 그 일에 대해 취소하거나 번복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을 기만하고 맞서서 더 많은 대책을 열어 놓도록 해야한다.
1976 . 4. 5 하워드 휴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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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Hughes
하워드 휴즈는 1905년생이며, 미국의 월트디즈니, 에디슨, 빌게이츠와 어깨를 나란히 위대한 사업가로
선정된 사람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마블의 아이언맨에서 하워드 스타크와 토니 스타크의 모델로 유명합니다.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이기도 합니다.

하워드 휴즈 주니어의 아버지인 하워드 휴즈 시니어는,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였다가 석유를 채굴할 때 사용하는
드릴을 발명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영국 귀족출신이었던 휴즈의 어머니는 하워드 휴즈 시니어와 결혼하여 하워드 휴즈 주니어를 낳게 됩니다.
하워드 휴즈는 어릴 적 부터 기계공학에 소질을 보이며 텍사스의 명문 라이스 대학에 기부입학을 했습니다.
1922년인 하워드가 16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2년뒤인 1924년에는 아버지마저 여의며 18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회사인 하워드 툴 컴퍼니를 이어받습니다.

지옥의 천사들 포스터
아버지를 여의고 난 뒤부터, 하워드는 대학을 자퇴하고 평소부터 하고싶었던 영화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에 심심치 않게 여러편을 찍었는데 이 작품들이 아카데미 수상후보에 오르게 되자,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927년부터 3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100만불을 들여 전쟁영화 '지옥의 천사들'을 개봉하게 됩니다.
이 '지옥의 천사들'은 광고비에 또 300만불을 추가해서 사용하지만, 그 2배의 수익인 800만불의 이익을 보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때 광고비를 사용하기 위해 회사 지분을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워드 휴즈와 교제한 여배우 중 하나였던 '베티 데이비스'
하워드 휴즈는 이후 '스카페이스', '무법자'와 같은 영화를 찍고 영화계를 성공적으로 그만둡니다
이 영화계에 있던동안 수많은 여배우들과 교제하며, 여기서 몇 명의 여배우들은 자신의 영화사와
계약해서 성공적인 스타로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부터 어려서 공학자, 사업가, 디렉터, 엔터테이너의
모든 역할을 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하워드 휴즈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습니다.

H-1 레이서 사진
하워드 휴즈가 전쟁영화 '지옥의 천사들'을 제작할 때에 비행기 전투장면 촬영때문에 비행기 개발에도 관심을 보였었는데, 비행기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하워드 휴즈는 1935년 경주용 비행기인 'H-1 레이서'를 만들어 당시 시속 563 km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하워드 휴즈는 비행기로 북미 대륙횡단기록에 도전하였고, 1938년 7월에 91시간만에 세계일주를 완수하면서 파일럿으로서의 명예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
항공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고 항공기 제작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고속 정찰기 제작의뢰를 군에게 받아 제작하지만, 이때에 자신이 직접 시험운행을 하면서 불시착해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이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얼굴에 콧수염을 기릅니다.
하워드 휴즈의 고속정찰기의 제작이 성공할 때 즈음 제트엔진이 개발되어 프로펠러를 이용한 고속정찰기의 제작이 필요없어졌고, 이러한 트라우마를 겪은 하워드 휴즈는 오히려 초거대 비행정인 '허큘리스'를 제작에 돌입하게 됩니다. 허큘리스는 오랜 개발기간과 시대에 맞지않는 비효율적인 항공기로, 비행을 하자마자 박물관에 들어가지만, 추후 이 휴즈 항공기 회사는 '아파치 헬기'로 유명한 군용헬기 'AH-64'를 제작합니다.

1966년, 하워드 휴즈는 수 차례의 비행기 사고로 인한 후유증과 정신병(강박장애)가 심해져 , 결국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가스로 이주한 뒤, 그곳의 한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임대하며 그곳에서 기업 운영 업무를 보다가, 자신이 묵은 호텔에 다른 사람도 묵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되자 그 호텔을 구매합니다.
사업가 기질을 보인 하워드 휴즈는 라스베가스를 글래머러스 하게 바꾸고 싶다고 얘기했고, 고급 유흥도시로 만들
고싶다는 그의 야망 하에 라스베가스 중심지인 스트립안에 있는 대형호텔 5개를 사게 됩니다.
또 건너편 호텔의 불빛이 자신의 수면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 호텔을 구입하고, 자신이 보고싶은 시간에 영화를
방송국에서 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라스베가스 방송국도 인수하게 됩니다.
하워드 휴즈의 행동을 아니꼽게 보는 마피아들도 있었지만 당시 하워드 휴즈의 권력과 힘, 재력은 미국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인물이었기에 오히려 호텔의 경영을 대신 맡아주고 뒷처리까지 해주는 조직으로 전락해버립니다.
하워드 휴즈 라스베가스의 호텔과 시설을 거의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 힘이 네바다 주까지 미쳤고, 사람들은 그를 라스베가스 남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의 라스베가스에 대한 애정은 핵폭발 실험 제지까지 이어졌는데, 미국정부가 주도하는 네바다 핵폭발 실험을 막기위해 엄청난 돈을 로비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이 핵폭발 실험만큼은 막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1976년 즈음 은둔생활을 이어가다 사망하면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 했지만, 그가 보여준 공학자, 영화 감독, 파일럿, 항공기 제작자, 사업가로 여러가지 성공을 거둔 모습, 또 강박장애와 결벽증을 가졌음에 불구하고 목적을 위해 이겨내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한 번 져주는 순간,
절대 그 일에 대해 취소하거나 번복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을 기만하고 맞서서 더 많은 대책을 열어 놓도록 해야한다.
1976 . 4. 5 하워드 휴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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